2014년 4월 16일 수요일

91년 여름



가끔은 오래 전 기억이 생생한 경우가 있다.
91년 여름 보길도로 여행을 갔었다.
며칠 민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십여명은 넘게 탈만한 통통배를 탔고, 피곤해서 선실에서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깨보니 연기가 자욱했다.
사람들은 우와좌왕 하면서도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도 급하게 선실벽의 선반위에 있던 구명조끼를 꺼내 일행의 뒤를 따랐다.

선실밖에 나가보니 기관실쪽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고 약간의 불꽃이 보였다.
선장, 직원들이 안내를 하는 것은 전혀 없었다.
다만 불, 연기 주위에서 뭔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에 섬도 많고 멀리 민가, 항구가 보이는 위치였다.
불이 나는 반대쪽 갑판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어선이 나타났다.
너나 할 것 없이 옮겨타기 시작했다.
한 두 대 정도가 더 나타나서 배 위에 승객들이 다 옮겨탔고 가까운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내려서 어떻게 해야 하나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동네 어른?) 돈을 걷는다.
일을 내팽겨치고 달려와 목숨을 구해준 어선들에게 얼마라도 돈을 줘야 한다고 한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죽다 살았으니 그렇게 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원래 목적지(목포였는지 확실하지 않다)로 가야겠기에 여객선 터미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그런데 관련자를 찾기 어렵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터미널에서는 자기들은 책임이 없다하고, 여객선 회사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은 연락을 못받았으니 기다리라 한다. 경찰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다친 사람도 없고, 갈길은 멀고, 목적지로 가는 배시간은 다가 오고 별다른 수가 없었다.
생돈을 내서 다시 표를 끊고 그냥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중에 든 생각은 이게 죽다 살은 것이 아니라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다는 것이었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야 하지만, 어떤지 알 길이 없다.
그 해 겨울에 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몇개월 배운 기억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에서 수영할 줄은 모른다.


등산의 교훈
http://runmoneyrun.blogspot.kr/2013/06/blog-post_17.html

오전에 살을 파고 들어가는 내향성발톱을 잘라 내느라 생피를 내고 있었다.
작년에 애가 다니는 학교에서 진행한 무리한 등산 덕분에 몇개월을 무릎통증으로 고생을 했고, 1년이 걸려 다시 자라난 발톱이 이중으로 구부러져서 마눌님의 도움을 받아 잘라 냈다.
그러고 나서 사고 뉴스를 봤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록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확인도 되지 않고 있었다.


안전과민증
http://runmoneyrun.blogspot.kr/2013/04/blog-post_19.html

한국전쟁이 끝난지도 60년이 넘게 지났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사고에서 교훈을 얻고, 개선하면 차후에 재발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안전 문제는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구성원 전체가 합의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매사에 사후 약방문이 될 뿐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운에 맡기고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댓글 7개:

  1. 학생들이라 더 안타깝고, 걱정이 많이 되네요.
    무탈하게 많은 인원들이 구조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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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 최대한 많이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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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독가스 마스크를 사서.. 집에 각자방에 하나씩 놓고.
    사무실에도 하나 씩 놔뒀어요.

    가끔 쓰는법을 와이프와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문쪽에 연기 가 많으면 옆집으로 발로 차면 뚫을 수 있는 얇으벽 위치를 가르쳐 주고..

    차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그런일들을 하는 거 밖에는... 할이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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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 전에 애들이랑 화재시 어떤 일을 해야하나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아파트가 옛날 구조라 베란다 옆벽도 없고 뛰어내릴 높이도 아니라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는데, 마스크가 있으면 시간을 벌 수 있겠군요. 좋은 생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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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4만원정도 하더라고요... 우리 멋진 입주자회의 회장님이 공구로 구매하셨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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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생존을 위해 공동체가 아닌 개인을 믿어야 하는' 특징이 전반적으로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만..이번일처럼 정말 생사가 달린 문제에서마저 그렇다는건 참..슬프네요 부디 귀중한 생명이 한사람이라도 더 구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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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사에 최선이 무엇인지 갈등하는 것을 피하기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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